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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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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우리 땅!  아름다운 독도! 해양과학으로 지켜 나가겠습니다.
1905년 일본 내각의 독도 편입 결정문
  • 작가: 일본내각총리대신
  • 발행자: 일본
  • 발행년도: 1905년
  • 소장위치: 독도박물관
1905년 1월 10일자 내무성의 청원문을 검토한 일본 내각은 독도가 “어느 나라도 이 무인도를 점령했다고 인정할 형적(形跡)이 없고 일본의 어부 나카이가 이 섬을 경영한 흔적이 있으므로.......”라고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 이름을 붙이고 시마네현의 관할에 두겠다고 불법적으로 결정하였다.
강원도 관찰사 이명래 보고서 江原道 觀察使 李明來 報告書
  • 작가: 이명래(李明來)
  • 발행자: 한국
  • 발행년도: 1906년
  • 소장위치: 독도박물관
규격 : 28cmX18.5cm

1905년에 독도를 불법적으로 편입한 시마네현은 독도를 조사하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1906년 3월에 가서야 비로소 독도를 조사할 수 있었다. 조사단이 조사를 마치고 시마네현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지만 풍랑이 심하여 울릉도에 기착하게 되었고, 울릉군수 심흥택을 방문하였다. 일본 조사단과 울릉군수가 대화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독도를 불법적으로 편입하였음을 알렸다. 이 소식을 들은 심흥택 군수는 그 이튿날 강원도 관찰사에게 긴급 보고하고 이명래 관찰사는 중앙정부에 보고하였다. 이 보고를 받은 참정대신은 “독도가 일본인의 영토라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므로 독도의 형편과 일본인들의 행동을 잘 살펴서 다시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관보 제1716호 울도군 설치
  • 작가: 미상
  • 발행자: 한국
  • 발행년도: 1900년
  • 소장위치: 국사편찬위원회
대한제국 관보 제 1716호로 칙령 제41호를 수록하고 있다. 내용은 울릉도에 울도군을 설치하고 울도군의 관할 구역을 울릉도 전역과 죽도 석도로 규정한 것인데 석도는 바위섬을 ‘독섬’이라고 부르고 음역하면 ‘독도’이고 의역하면 ‘석도’이기 때문에 석도는 분명히 독도를 지칭한다. 칙령과 관보에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분명히 규정한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필사본)
  • 작가: 춘추관편
  • 발행자: 한국
  • 발행년도: 1454년
  • 소장위치: 국립중앙도서관
규격 : 23.0cmX36.5cm

세종의 명에 의하여 맹사성 등이 편찬한「신찬팔도지리지」를 보완하여 1454년(단종2)에 세종실록을 편찬하면서 부록으로 수록하였다. 전국의 인문지리적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권 153의 강원도 울진 현조에 “우산 무릉 두 섬은 울진현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서로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 우산국이었다.”라고 기록하여 우산도가 독도임을 분명히 하고 우리땅임을 밝혔다.
수도제강 水道提綱
  • 작가: 제소남(齊召南)
  • 발행자: 중국
  • 발행년도: 18세기 중반
  • 소장위치: 국립중앙도서관
규격 : 10.1cmX17cm

청대(淸代)에 개인이 편찬한 중국 전역과 인근 여러 지역에 관한 수계(水系)를 정리한 지리서이다. 저자인 제소남(齊召南)은「청일통지」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총28권으로 제26권에 「조선국제수(朝鮮國諸水)」에 대하여 기술한 것에는 동해 가운데 두 섬이 있는데 그 섬 이름을 천산도(千山島)와 울릉도(菀陵島)로 기록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이 청나라 때 선교사 레지가 만든「조선왕국도」에 반영되어 울릉도는 Fanlingtao, 독도는 천산도로 읽어 Chianxantao로 표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시마네현 고시 40호
  • 작가: 마쓰나가 부키치(松永武吉)
  • 발행자: 일본
  • 발행년도: 1905년
  • 소장위치: 독도박물관
1905년 2월 22일자로 독도를 불법적으로 일본 영토로 편입한다는 시마네현 지사 마쓰나가 부키치의 고시문이다.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섬과의 거리는 서북쪽으로 85해리 떨어져 있는 섬을 죽도(竹島)라 칭하고 이제부터 본현 소속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문서는 대부분이 필사본인데 이 문서는 활자본으로 된 점으로 미루어 후에 제작된 문서일 것이다.
안용복 공술조서-원록9 병자년 조선주 착안 일권지 각서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券之覺書
  • 작가: 미상
  • 발행자: 일본
  • 발행년도: 1696년
  • 소장위치: 시마네현 오키섬 무라카미 가문(村上家)
안용복은 1693년에 일본에 1차 도일하여 일본 어부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출어하는 것을 막아 달라고 일본에 항의하여 일본 막부로부터 이를 금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귀국하였다. 그 후에도 일본 어부들이 계속하여 울릉도에 불법적으로 출어하자 그는 1696년에 제2차로 도일하여 이를 항의하였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였는데 최근에 시마네현의 오키섬에서 「안용복의 공술조서」가 발견되어 안용복의 활동이 확실해졌다.
안용복의 깃발
  • 작가: 안용복
  • 발행자: 한국
  • 발행년도: 17세기 후반
  • 소장위치: 일본 오키섬 현립 박물관
안용복은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출어를 금지시키고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확약을 일본 막부로부터 받았다. 1696년 제2차 도일 때에는 ‘울릉 자산 양도감세장’이란 칭호를 사용하면서 호키주(현 시마네현)태수와 담판하였다. 이때 안용복이 만들어 사용하였던 깃발인데 ‘조울양도감세장 신 안동지 기(朝鬱兩島監稅將臣安同知騎)’라고 쓰여 있다.
우산국 점령 「삼국사기」
  • 작가: 김부식편
  • 발행자: 한국
  • 발행년도: 1145년(인종23)
  • 소장위치: 서울대학교 규장각
규격 : 21.2cmX32.2cm

삼국사기는 1145년에 김부식 등에 의하여 편찬된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에 관한 기전체의 가장 오래된 정사이다.
이 기사는 512년(지증왕13)에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점령하여 신라에 복속시킨 사실을 적은 것이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지배하였던 해상왕국이었다. 이사부 장군은 우산국을 점령하기 위하여 나무 사자를 만들어 배에 싣고 울릉도에 도착하여 그곳 주민들을 위협하여 항복을 받았다.
울릉도 조공기사「고려사 高麗史」
  • 작가: 정인지
  • 발행자: 한국
  • 발행년도: 1451년
  • 소장위치: 국립중앙도서관
규격 : 19cmX29.5cm

고려시대의 역사를 정인지 등이 1451년(문종1)에 기전체로 편찬한 고려의 정사이다. 울릉도에서 백길과 토두를 보내 조공을 바친 기록이 고려 태조실록에 실려있다. 울릉도와 우산도가 고려의 행정구역에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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