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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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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우리 땅!  아름다운 독도! 해양과학으로 지켜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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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C
  • 1403년(조선 태종 3년)
    무릉도 거주민에게 육지로 나올 것을 명령
  • 1407년(조선 태종 7년)
    3월 대마도수호(對馬島守護) 종정무(宗貞茂)가 잡혀간 사람들을 송환하고 토물(土物)을 바치며 무릉도(武陵島)에 옮겨 살기를 청하였으나 거절함.
  • 1416년(조선 태종 16년)
    9월 삼척사람 전 만호(前 萬戶) 김인우(金麟雨)를 무릉등처안무사(武陵等處安撫使)로 임명하여 거주민을 쇄환하게 함.
  • 1417년(조선 태종 17년)
    2월 김인우(金麟雨)가 우산도(于山島)에서 토산물과 주민 3명을 데리고 돌아와 섬에는 15호 86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보고함. 우산ㆍ무릉(于山武陵)도에 주민의 거주를 금하고 거주민을 쇄출하기로 최종결정함으로써 수토정책(搜討政策)이 확립됨. 8월 왜가 우산ㆍ무릉(于山武陵)을 노략함.


  • 1425년(조선 세종 7년)
    10월 우산무릉등처안무사(于山武陵等處按撫使) 김인우(金麟雨)가 무릉도에 도망가 살던 남녀 20명을 잡아오니, 충청도의 깊은 산군(山郡, 산중 고을)에 정착시키고 3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기로 함.
  • 1429년(조선 세종 11년)
    12월 봉상시(奉常寺, 제사와 시호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던 관청) 윤(尹, 관원의 직제 중 하나) 이안경(李安敬)을 강원도에 보내어 요도(蓼島)에 대해서 살펴보게 함.
  • 1430년(조선 세종 12년)
    1월 봉상시 윤(奉常寺尹) 이안경이 요도(蓼島)에 대해서 살펴보고 돌아오니, 함길도 감사에게 요도(蓼島)의 지형과 주민의 생활에 대해서 전함.
    4월 상호군(上護軍) 홍사석과 전농윤(典農尹, 식량의 징수와 감독을 담당했던 관직), 신인손(辛引孫)을 각각 강원도와 함길도에 보내어 요도(寥島)를 찾아보게 함.
  • 1432년(조선 세종 14년)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가 편찬되었는데,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조'에 “우산(于山), 무릉(武陵) 두 섬이 정동 쪽 바다에 있는데,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라고 기록함. 이 내용은 1454년(단종 2)에 완성된『세종실록지리지』에 그대로 실리게 됨.
  • 1436년(조선 세종 18년)
    윤 6월 강원도 관찰사 유계문이 무릉도 우산(武陵島牛山)에 주민을 모으고 만호(萬戶)와 수령(守令)을 설치하자고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 1438년(조선 세종 20년)
    4월 전 호군 남회와 전 부사직 조민을 '무릉도순심경차관(茂陵島巡審敬差官)'으로 임명.
    7월 남회와 조민은 남녀 66명과 토산물을 가지고 돌아옴.
    7월 강원도 관찰사에게 요도(蓼島)의 위치를 다시 조사하게 함.
  • 1445년(조선 세종 27년)
    8월 강원도 관찰사에게 요도(蓼島)를 찾는 자에게 포상할 것을 명하고, 또 를 보내 찾게 했으나 끝내 실패함.


  • 1451년(조선 문종 원년)
    이 해에『고려사』가 편찬되었는데, '지리지(地理志)' 동계 울진현조에 “울릉도(鬱陵島)는 현의 정동 쪽 바다 가운데 있다. … 일설에는 우산(于山)·무릉(武陵)은 원래 두 개의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라고 기록하였음.


  • 1472년(조선 성종 3년)
    2월 병조(兵曹)에서 강원도의 삼봉도(三峯島)를 찾기 위한 절목(節目)을 올림.
    4월 삼봉도 경차관(三峯島敬差官) 박종원(朴宗元)이 하직함.
    6월 강원도 관찰사가 치계(馳啓, 말을 달려와 아룀)하기를, 5월 28일 울진포를 출발한 박종원 일행이 폭풍우를 만나서 박종원이 탄 배는 6월 6일 간성군으로 돌아왔고, 사직(司直) 곽영강 등 나머지 3척은 5월 29일 무릉도(武陵島)에 도착하여 섬을 수색하고 6월 6일 강릉 우계현(羽溪縣)으로 돌아왔다고 함.
  • 1473년(조선 성종 4년)
    1월 영안도 관찰사 정난종에게 삼봉도(三峯島)와 요도(蓼島)에 대해서 조사하게 함.
  • 1476년(조선 성종 7년)
    6월 김한경(金漢京) 등이 삼봉도(三峯島)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므로, 영안도 관찰사 이극균(李克均)에게 사람을 보내 수색해 보게 함.
    10월 영안도 관찰사가 보낸 김자주(金自周)가 9월 삼봉도를 보고 형상을 그려옴.
  • 1479년(조선 성종 10년)
    윤 10월 영안도 경차관(永安道敬差官) 조위(曹偉)가 김한경(金漢京), 김자주(金自周) 등 21명을 10월 27일 삼봉도(三峯島)로 들여보냈음을 보고함. 이들은 삼봉도를 찾지 못하고 돌아옴.
  • 1480년(조선 성종 11년)
    2월 삼봉도 초무사(三峯島招撫使)의 직책을 피하려 한 상호군(上護軍) 정석희(鄭錫禧)와 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 박종원(朴宗元)을 귀양 보냄.
    5월 삼봉도 초무사(三峯島招撫使) 심안인(沈安仁)에게 삼봉도(三峯島) 행차를 중지하게 함.
  • 1481년(조선 성종 12년)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을 편찬하였는데, '강원도 울진현 산천조'에 “우산도(于山島), 울릉도(鬱陵島) - 혹은 무릉(武陵), 우릉(羽陵) - 두 섬은 현 정동 쪽 바다에 있는데 날씨가 맑으면 나무 등을 볼 수 있고, 바람이 편하면 2일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우산 · 울릉이 원래 하나의 섬이라고도 한다. …”라고 하였음. 이 내용은 1530년(중종 25)에 완성된『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대로 전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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