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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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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우리 땅!  아름다운 독도! 해양과학으로 지켜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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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C
  • 1702년(조선 숙종 28년)
    5월 삼척영장(三陟營將) 이준명(李浚明)이 울릉도(鬱陵島)를 수토하고 지도와 토산물을 바침.
  • 1705년(조선 숙종 31년)
    6월 울릉도(鬱陵島) 수토 후 돌아오는 길에 평해 등의 군관 황니건(黃仁建) 등 16명이 익사한데 대해 휼전(恤典, 정부에서 이재민 등을 구제하기 위해 내리는 특전)을 거행함.
  • 1708년(조선 숙종 34년)
    2월 부사직(副司直) 김만채(金萬埰)가 울릉도(鬱陵島)에 진(鎭)을 설치하자고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 1717년(조선 숙종 43년)
    3월 강원도 관찰사 이만견(李晩堅)이 흉년을 이유로 당해의 울릉도(鬱陵島) 수토를 정지하자는 장계를 올려 받아들임.


  • 1726년(조선 영조 2년)
    10월 강원도 유생 이승수(李昇粹)가 울릉도(鬱陵島)에 변장(邊將)을 두고 주민을 모아 경작하게 하자고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 1735년(조선 영조 11년)
    1월 강원도 관찰사 조최수(趙最壽)가 흉년을 이유로 당해의 울릉도(鬱陵島) 수토를 정지할 것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 1769년(조선 영조 45년)
    10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건의로 문적(文蹟, 나중에 상고할 문서와 장부)을 널리 모아 울릉도에 관한 책자를 만들기로 함. 제조 원인손(元仁孫)에게 명하여 삼척영장을 지낸 자와 더불어 울릉도의 지형과 물산을 그리게 함.
  • 1775년(조선 영조 51년)
    일본 최초로 경위도선을 그려 넣은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일본여지노정전도(日本輿地路程全圖)에 울릉도와 독도가 각각 '다케시마 혹은 이소다케시마(竹島一云磯竹島)', '마츠시마(松島)'로 그려졌다. 울릉도 오른쪽에 "(이 섬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이즈모에서 오키도를 보는 것 같다(見高麗猶雲州望隱州)"고 부기하여, 두 섬을 조선의 영토로 구분함.


  • 1785년(조선 정조 9년)
    일본의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저술한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의 부도(附圖)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地圖)』와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함.
  • 1787년(조선 정조 11년)
    7월 울산어부 14명이 울릉도(鬱陵島)에서 전복과 향나무, 대나무 등을 채취하고 돌아오다가 삼척 포구에서 잡힘.
  • 1794년(조선 정조 18년)
    6월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沈晉賢)이 울릉도 수토결과를 보고함. 수토관(搜討官) 월송만호(越松萬戶) 한창국(韓昌國)은 4월 21일 출발하여 5월 8일에 돌아옴. 그는 4월 26일 가지도(可支島)를 다녀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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